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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우리나라 기독교가 왜 '기독교 근본주의'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근본주의의 탄생부터 '미국 북장로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형성과정

 

미국은 19세기 중반 급격한 사회적 격변을 격게 됩니다.
전쟁, 계급갈등, 범죄 등 수많은 문제들과 함께 '자유주의 신학'이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보수적 백인 기독교인들의 가치관이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출간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흔드는 위협이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전통적 신앙을 보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화되면서 프린스턴 신학교는 ‘성서무오설’을 교리상으로 완성하여 진보진영의 '성서비평학'에 학문적으로 대항하려 했습니다. 

 

영국에서 건너온 ‘존 달비John N. Darby’는 자신의 *1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미 대륙에 전파했습니다.
문자적 성서해석, 비관적 역사관, 기성교회에 대한 비판을 핵심으로 하는 달비의 종말론으로 ‘무디D. L. Moody’를 설득시키면서 미국에서의 통로가 확보됩니다. 무디는 자신이 주도하던 부흥운동, 폭넓은 인맥, 풍부한 재정을 동원하여 성서무오설, 부흥운동, 묵시적 종말론이 연합전선을 형성합니다. 

 

근본주의 제도적 발전과 갈등


1910년부터 1915년까지 발행된 학술잡지 [근본적인 것들Fundamentals]이 평신도 사업가 레이먼과 스튜어트의 지원으로 300만부 이상 무료로 보급되면서 근본주의 신학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근본주의가 확산되면서 각 교단은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간의 첨예한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근본주의 신학을 토대로 한 교단들이 탄생합니다.

 

근본주의자들의 영향력하에서 1910년 '미국 북장로교회'는 총회에서 5개조 교리를 신앙의 본질로 선언합니다. 1924년 총회 직후, 진보적 그룹이 5개조 교리에 반대하는 ‘어번선언’에 서명함으로써 분열됩니다. 이 갈등은 1929년 프린스턴 내에서 근본주의를 주도하던 ‘그래샴 메이첸J. Gresham Machen’과 그를 따르던 교수들이 프린스턴을 떠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하고, 이후 정통장로교회를 설립함으로써 일단락됩니다.

 

당시의 갈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1925년에 벌어진 ‘스코프스 재판’, 일명 원숭이 재판입니다. 이건 다음에 하도록 하죠..


오늘은 여기까지

 

*1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은 천년왕국전에 예수님 재림이 이루어진다는 설입니다. 전천년설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과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al Premillennialism로 나뉘어집니다. 종말론의 차이점을 보면 크게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7년 대환난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역사적 전천년설은 7년 대환난을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자료출처 :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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