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Dust

‘데오빌로Theophilus’는 누구인가?

사도행전의 기자 '누가'는 그의 첫 번째 저서에서 수신자가 '데오빌로'라고 밝히고있다.

[행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데오빌로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가 먼저 쓴 글"(헬라어: 톤 프로톤 로곤)에서 정관사 "톤"은 선행(先行)된 어떤 기록을 지적하는데,

그것은 누가복음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눅1:3-4]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복음에서 각하라는 존칭을 사용했는데, 사도행전에서는 각하라는 존칭이 빠진 이유는,
누가복음을 기록할 당시에는 각하라고 하는 존칭을 사용해야 하는 관계였지만,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 '데오빌로'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인 누가의 입장에서 존칭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데오빌로'에 대해서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잠시 언급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여러가지 설(說)이 존재한다.

 

– 상징설과 실재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수신자 '데오빌로'의 정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데오빌로’를 실재인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보는 시각과,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보는 것이다.
 
'데오빌로'를 집단으로 보는 것은 그 이름의 뜻을 추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시각에 근거한다. 
그 이름은 헬라어로 ‘하나님’이라는 ‘데오스theos’와 ‘사랑하다’는 동사인 ‘필레오Philleo’ 
혹은 ‘친구’라는 명사인 ‘필로스Pilos’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인데, 
'데오빌로'를 ‘믿는 자’에 대한 애칭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친구’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논리적으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선 왜 처음부터 성도’라는 일반명사를 써지 않고 구지 ‘데오빌로’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점과, 
‘데오빌로’를 상징적인 명칭으로 사용한 예가 없다는 점.

 그리고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각하kra,tistoj'라는 단어는 모두 실재인물에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크라티스토스kra,tistoj는 영어로 the most excellent로 번역되며, "가장  강한", "가장  존경하는', 지존하신, syrongest의 뜻을 갖는 형용사)

[행23: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행24: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 무지하옵나이다

[행26:25]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

이처럼 '각하'는 성도에게 붙일 수 있는 표현이 아니었다. 
이 칭호는 천부장이나 백부장에게도 사용되지 않았으며, 총독과 같은 고급관리에게만 붙이는 존칭이었다. 

 

'데오빌로'가 실존인물의 고유명사라면,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에 대하여도 3가지 가설이 있다.


– 고위직 그리스도인설
 
누가복음의 서문에서 그를 '각하'로 말하고 있기에 그 말 그대로 정치적인 고위직 인물로 추정한다.
또한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표현에 근거하여, 
데오빌로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배운 바가 있고, 이를 더 확신하게 할 수 있는 근거로 누가복음을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다. 

먼저 데오빌로가 ‘배운 바(카테케데스)'가 있다고 말한 내용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첫째는 무엇을 배웠느냐 하는 관점이고, 또 다른 것은 어떻게 배웠느냐는 관점이다. 

데오빌로를 그리스도인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배웠다는 내용을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이해한다. 
어떤 이는 새신자처럼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나 신앙 내용을 배웠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좀 더 심도 있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기독교적인 학습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본다. 

어떻게 배웠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당시의 신앙 교육 방식이 문답식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배우다(카타케오)'라는 단어의 의미가 영어로 '교리 문답catechism'으로 발전하였기에 
그 배움은 신앙 문답식 교육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데오빌로를 크리스천으로 보는 크리드Creed 등은 
배운 바”의 의미를 기독교적인 가르침 및 교육이라고 이해한다.

즉 데오빌로가 그리스도인이기는 하지만, 예수님과 그의 복음에 대한 그의 지식이 부족하고 불충분하므로,
그 지식을 보충 및 보완하여 확실히 알도록 하기 위하여 누가가 두 권의 책을 저술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알게 하다(에피기노스코)'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미처 모르는 것을 알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실히 한다confirm'는 뜻을 갖고 있다는 것에 보충된다. 
그와 함께 ‘그 배운 바의 확실함(혼 카테케세스 로곤 텐 아스팔레이안)'이라는 구절에서 ‘로고스’의 소유격인 
로곤’이라는 단어에 착안하여, 그 배움은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해석한다. 
로고스라는 기본 교리에 확실함이라는 상위 학습을 위해 누가복음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김득중(金得中)은 데오빌로가 로마인 고위직 그리스도인이라는 근거로 교회 전승을 상기시키고 있다. 

교회 전승 중에는 ‘데오빌로’가 도미티안Domitian 황제의 사촌인 클레멘스Flavius Clemens였다는 전승도 있다. 
그의 아내가 도미틸야Domitilla였고 침례인은 아니었지만 교인이었으며, 
그래서 클레멘스도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가졌고 또 교육도 받았다고 한다.


– 후원자설

김경진 등 일부 학자는 데오빌로를 누가의 저술활동을 후원하는 자patron로 주장한다. 
그래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서두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책의 서두에 헌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화이트는 “누가가 자신이 한 때 섬겼던 어떤 로마 귀족에게 글을 쓰고 있으며, 
그 사람이 기독교의 진실된 모습을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당시 기독교에 대한 혐오스러운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썼으며, 
그 일을 후원한 자가 데오빌로라는 것이다. 

이런 후견인설을 설득력 있는 견해로 받아들이면서, 데오빌로를 누가 공동체의 대표자로 여기기도 한다. 

김경진은 후견인설과 관련하여,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한 작가가 어떤 작품을 저술할 경우 저술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후원자의 도움에 의존하였다. 
고대 책의 저술은 두루마리 용 가죽, 잉크 및 펜 등을 구입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경비가 소요되는 값비싼 작업이었기 때문이며, 당대의 집필 수단을 고려할 때 
한 권의 책을 저술하기 위해서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이 요구되었으므로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생계비 지원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책의 저술이 끝난 다음에는 저자Client와 경제적 도움을 준 후원자Patron에게 
그 책을 헌정하는 것이 당대의 사회적 관례였기 때문이다. 

김경진은 이와 관련하여 경제적 후원자인 한 사람을 위해 기록되었다고 하는 “대표적 수신인” 개념으로 설명한다.
신약의 28%나 되는 긴 책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하여 기록하였다는 것은 조금은 무리한 추측이라고 판단하여, 
대표적인 수신인 개념을 주장한다. 

누가 공동체의 구성원이 이방인이고 부유한 자인데, 데오빌로를 그런 구성원과 일치하는 아이콘으로 보는 것이다. 

후원자설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은 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만 후원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느냐는 지적 때문이다. 
많은 제자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였는데, 
성서 발간을 위해 얼마의 비용을 냈다고 해서 이름을 밝히는 것이 당시 기독교회에서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복음에 비해 분량이 적지만 요한복음이나 마태복음도 기록하려면 비용이 제법 들었을 것인데, 
왜 그런 것에는 후원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누가의 저작에만 나오느냐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요한복음을 보면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고, 
단지 ‘사랑하는 제자’라고 하여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유대계 고위공직자설

유대계 고위 공직자설은 데오빌로의 신앙이 기독교가 아닌, 유대교에 속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를 구약을 잘 아는 유대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침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현재의 문맥으로 단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의 내용을 볼 때 더욱 그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우다(카타케오)’ 또한 기독교적인 신앙교육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앙 교육 방식인 문답식 교육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배운 바’의 내용이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답식 교육은 어릴 적에 하는 암기식 학습법이었지, 성인에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를 어려서부터 신앙적인 양육을 받은 유대계 인물로 보는 것이다. 

바울은 천부장보다 우월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그를 이미 알았던지, 로마에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로마의 고위직 인사로서 유대인과 관련된 일을 황제에게 자문한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바벨론 왕이 다니엘과 그 친구를 뽑아 그 나라의 정치 지도자로 키운 것처럼, 
로마제국도 정복한 각 나라의 문화와 종교를 일일이 알 수 없기에 그 나라의 우수한 인재를 뽑아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데오빌로가 그렇게 선발되어 고위직에 올라갔는지, 바울처럼 본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천부장보다 높은 ‘각하’인 그가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며,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을 전혀 모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눅1: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이 구절의 의미를 누가복음을 읽기 전에 구약을 배운 바가 있지 않느냐고 지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배우다’라는 뜻은 성경에 대해 한두 번 읽었다는 정도의 교육이 아니라, 
암기할 정도의 교리문답식으로 배웠다는 것이다. 

그 단어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 능통한 아볼로[행18:24]에게 사용되기도 했다. 
그의 배움은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의 기초를 배운 것이 아니었지만, 
성경과 목회에 대한 기본 소양이 충분했기에 고린도교회에 가서 바울을 이어 목회를 했던 것이다. 
'데오빌로' 또한 목회자나 랍비는 아니지만 상당한 성경 지식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이름엔 ‘하나님’을 뜻하는 ‘데오스Theos’가 들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즐겨 쓰는 민족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민족은 로마인이라기보다는 유대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수많은 이름 중에 ‘데오스’와 관련된 것은 오직 유대인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더라도 이런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다. 
유대계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적인 양육을 받으며 자라난 디모데가 ‘공경’을 뜻하는 헬라어 ‘디메’와 
‘하나님’을 뜻하는 헬라어 ‘데오스’가 합쳐진 이름을 갖고 있듯이, 
데오빌로 또한 유대적인 의미 혹은 히브리어적인 의미를 헬라어로 번역해 바꿔 사용했을 것이다.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듯이 데오빌로도 이미 성경을 배운 자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데오빌로는 디아스포라로서 로마에 살고 있지만, 
그는 디모데와 아볼로처럼 성경을 일찍이 배우고 익혔기에 유대인과 관련된 문제를 로마 황제에게 조언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누가는 바울이 재판을 위해 로마에 왔을 때 누가복음을 통해 구약의 예언을 완성하신 예수를 소개한 후 
사도행전을 통해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셨음을 변증한 것이다. 

사도행전 초반에선 예수의 죽음을 목격한 예루살렘 사람 중 어느 누가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느냐 하며 설득했고, 
중반부에선 세 번에 걸쳐 전도여행을 하면서 구약을 통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성경을 통해 회당에서 입증한 바울의 전도를 설득했으며, 
후반부에선 예수의 십자가형을 언도하고 집행한 이스라엘의 집권자인 헤롯왕과 로마총독 중 어느 누가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느냐 하며 부활을 증거 한 것이다. 

유대계 고위공직자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유대인의 이름을 표기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입증될 수 있다.
사도행전에는 유대인의 이름이 네 가지로 구분되어 표기된다. 

첫째는 아브라함과 같이 구약 때부터 바뀌지 않고 계속 쓰이는 히브리식 표기법이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바나바’도 이런 방식을 따른 것이다.
 이 이름은 정관사의 격변화를 통해 주어와 목적어 등의 역할을 한다.

둘째는 나사로와 마리아와 같이 이름을 헬라어 발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헬라어 이름의 뜻을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소리를 따라 유사한 이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엘리에셀의 이름을 나사로라고 하고, 미리암을 마리아라고 하는 것은 이런 방식을 따른 것이다. 

셋째는 히브리어 이름을 헬라어로 번역하여 그 뜻을 살리는 방식이다. 
‘하나님 공경’이라는 뜻의 ‘디모데’와 ‘구원을 강하게 하다’는 ‘소스데네(고린도의 회당장)'와 같이
 헬라 지역의 디아스포라는 이름을 현지어로 번역해서 표기하기도 했다.
 
넷째는 히브리어 이름을 포기하고 헬라어와 라틴어에 맞게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사울이라는 이름은 헬라어나 라틴어로 적절한 격변화를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름을 바꾼 것이다.

전도하고자 하는 지역의 사람들이 부르기 편하면서도 자신의 본래 이름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들의 어법에 어색하지 않게 이름을 바꾸었다. 
'데오빌로'도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생활하기 위해 바꾼 것으로 보는 게 설득력이 있다.
그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바꾸면 ‘아헤브 엘로힘(하나님의 사랑)' 혹은 ‘아하비야(여호와는 사랑이시다)'이었을 것인데, 
그 이름은 당시 사회에서 부르기가 어색하여 헬라식으로 변경한 것이다. 

 


출처 :

daum 블로그 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NQcM
기독 정보넷 http://www.cjob.co.kr/bbs/board.php?bo_table=sermons&wr_id=2256
한국 신학  http://www.koreatheology.or.kr/view.html?id=4568

 

4 comments for “‘데오빌로Theophilus’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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