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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성 어거스틴)Augustine

Augustineofhippo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 시절부터 도둑질과 거짓말을 일삼으며 학교에 가기를 싫어했고, 나쁜 행실 때문에 벌을 받는 일도 많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16세에 부유한 친구의 후원을 받아 카르타고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이교 문화에 심취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의 경고와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져서 라틴어, 수사학, 수학, 음악,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빠져들었습니다.

 

지식을 탐구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종교에서 지혜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페르시아의 마니교로 개종한 후 그는 로마를 여행하면서 법률가로 이름을 떨쳤고,
곧 밀라노 대학에 수사학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당시 밀라노의 주교는 암브로시우스로 그는 숭고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수사학에 바탕을 둔 탁월한 설교자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비범한 지성인이자 독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처럼 논리 정연하고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기독교에 관해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86년 어느 여름날, 아우구스티누스가 무화과나무 그늘에 앉아 있을 때 "펼쳐 읽으라"는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즉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을 펼쳤습니다.

 

천박하고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 음탕하고 방탕하게 살면서, 말다툼이나 일삼고 눈에 보이는 것이면 무엇이든 탐내면서, 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차려입으십시오! 꾸물거리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당장 일어나십시오 (롬13:13~14)

 

그 후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로 돌아가 기독하고 말씀을 연구하며 묵상하는 수도사적 삶을 추구했습니다. 

 

391년 히포에 머물던 그리스도인들이 아우구스티누스를 사제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4년 후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주교가 되어서도 소박한 삶을 살며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구원의 교리를 놓고 브리타니아의 펠라기우스와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16세기 종교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신학자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자료출처 : 기독교 역사 100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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