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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Martin Lu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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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 아인스레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광산은 루터가 좋은 교육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충분한 수익을 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최고의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대학 입학 전 시험에서는 57명 중 30등에 그쳤습니다. 그래도 명문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최단기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루터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가까스로 벼락이 비껴가는 경험을 한 루터는 광부들을 지키는 성 안나에게 수도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했던 터였습니다. 루터는 약속을 지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입회했습니다.

 

신학 박사 학위를 따고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로 임용되었지만, 루터는 자신의 죄성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는 알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알지 못했습니다. 1510년, 로마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지만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만 더 강해질 뿐이었습니다. 로마서 강의를 준비하면서 루터는 어떻게 공의의 하나님이 동시에 자비로우실 수 있는지 고심하다가 1장 17절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진 사람은 참으로 살 것이다.

 

마침내 루터는 의인은 선한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발견하면서 루터는 영혼부터 거듭났고,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침묵할 수 없었던 루터는 신념 선언문인 95개 조 반박문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비텐베르크 가톨릭 교회 문에 붙였습니다. 혜성같이 등장한 금속 활자 인쇄술이 이를 도왔고, 이 혁명적 생각은 재생산되어 유럽 전역에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교황은 루터의 반박문에서 41개가 이단적이라고 비난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포도원을 해치는 멧돼지라고 비유한 교서를 보내며 이에 반박했습니다. 그러자 루터를 따르던 학생들은 로마 교회 법전을 불태웠고, 이에 질세라 루터는 교황이 내린 교서를 불에 던졌습니다.

 

로마와 비텐베르크 사이에 신학적 논쟁이 오가면서 루터는 자신의 주장을 다듬고 교리를 확장해 오직 성경만이 진리와 생명의 기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로마는 루터의 가르침이 치명타가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교황은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하면서 보름스Worms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루터의 사상을 접하고 난폭해진 독일 농민들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요구했습니다. 1525년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루터는 이를 비판했습니다. 루터가 원한 것은 폭동이 아닌 진리였습니다. 그가 지시한 사회적 변화는 일례로 성직자가 결혼하는 것이었습니다. 루터 자신도 전직 수녀였던 카타리나와 결혼해 여섯 자녀를 두었습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하짐나 끊임없는 재판과 여행으로 몸은 쇠약해졌고, 결국 62세에 자신이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습니다.

 

위클리프나 후스, 왈도파 같은 이들의 도전이 있었지만 로마 교회는 1000년간 아무런 제재 없이 유럽을 지배했다. 그러나 루터는 로마의 부패와 왜곡된 신학을 폭로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을 옥죄던 사슬을 끊었습니다.

 

자료출처 : 기독교 역사 100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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