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Dust

근대주의/현대주의 논쟁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현대주의 Modernism이라는 큰 물결은 회의주의자들에게 기독교를 의심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 예수가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사실, 인류가 지닌 타락의 본성과 구원이 필요한 이유, 예수가 이루신 대속의 죽음과 뒤이은 부활, 무엇보다 성경의 감동과 신뢰성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진화론에서 파생된 사상이 종교에 적용되면서 이 교리들은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로 대체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공부한 미국인들이 1820년대에 독일 대학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을 들여왔습니다. 자유주의 사상에 따르면

 

참된 종교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는 우리의 감성에서 발견할 수 있으므로 신학은 성경의 고백이 아니라 전능자를 경험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깨달음을 적용하는 가장 고매한 형태는 공동의 선을 위한 사회적 윤리, 즉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된다.

 

점차 심각해지는 자유주의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은 1910~1915년까지 기독교 핵심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일련의 소책자, [근본들 The Fundamentals]을 발간했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은 1925년 테네시 데이튼에서 벌어진 스코프스의 원숭이 재판을 통해 터졌습니다. 고등학교 과학교사인 존 스코프스는 진화론 강의를 금하는 주법에 대한 반발로 진화론을 가르쳤고, 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적대적인 동부 언론이 창조론과 기독교를 믿는 이들을 무지하고 편협한 남부 촌뜨기로 묘사하면서 상황이 엉뚱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브로드웨이 연극 [신의 법정 Inherit the Wind]과 이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 두 편을 통해 이런 인식이 전국적으로 퍼졌고, 아직도 일각에서는 기독교와 창조론에 대한 과거의 인식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신학교, 교회가 자유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면서 자유주의자들은 이 사태에서 큰 혜택을 누렸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의 체제를 갖추고 자유주의 세력에 문화를 넘겨 버렸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이 신학대학과 교회 강단을 점령하면서 근본주의자들은 삶의 모든 것, 특히 지성에 대해 공격적이고 분리주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이 가진 폐쇄적인 세계에서는 반지성주의가 활개를 쳤습니다. 교육과 지식인을 위험하고, 심지어 비기독교적인 것으로 간주했으며, 감정과 경험을 사고보다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대공황과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면,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면 그런 끔찍한 고통은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단 말인가? 처참하고 무시무시한 악에 무방비 상태였던 자유주의 사상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며, 인간 이외의 누군가로부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졌습니다. 일부 자유주의 학설은 명맥을 이어갔지만 사람들은 이끌어가는 가치관으로서 정통 자유주의는 끝이 났습니다.

 

반면 근본주의 Fundamentalism는 살아남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일반인들을 스코프스 재판 이래로 인식을 바꾸지 않았고, 근본주의가 지닌 태도, 즉 사사건건 반대하고 트집 잡는 것과 분리주의적 성향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결국 1940년대 말, 칼 헨리, 빌리 그레이엄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핵심 교리는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더 둥글둥글한 보수주의 기독교를 제시했습니다. 그 결과 현대 복음주의가 탄생했습니다.

 

자료출처 : 기독교 역사 100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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