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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Karl B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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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스위스 출신 신학자 칼 바르트는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과 히틀러의 나치에 맞서면서 혈혈단신으로 군중을 마주한 사람입니다.

 

20세기 초, 유럽은 자유주의 교리라는 거대한 물결에 휩쓸렸습니다. 바르트는 그 물결을 막고 훗날 신정통주의로 명명된 신학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나치의 광기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바르트는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이자 신학과 교회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였습니다. 바르트는 유럽의 유수 대학에서 공부했고,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에게서 최고의 자유주의 사상을 배웠습니다. 학업을 마친 후 10년간 바르트는 작은 마을에서 목회했습니다. 그러나 설교 준비를 위해 성경을 연구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잔혹상을 목격하면서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적이지도 않고 진리도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몇몇 대학에서 강의하는 동안 바르트는 나치가 권력을 잡는 모습을 공포 속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나치즘보다 더 끔찍한 것은 나치즘에 적극적으로 타협한 교회였습니다. 일부 독일 교회는 아리안족 예수님이 유대교를 정복하는 정복자라고 가르치며 나치즘과 기독교의 공통점을 찾아내려 애썼습니다. 바르트는 교회가 말씀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이런 광기가 나타났다고 분석했습니다. 1934년 그는 고백교회 The Confessing Church 설립을 지원했습니다. 이 교회는 독일 교회에 기독교로 돌아오라고 촉구하며 나치 독일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바르트는 본 대학에서 해임되었습니다. 이후 고향 바젤에서 신학 교수직을 제의받은 바르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젤에 머물며 강의를 했습니다.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타락한 존재이며, 이 때문에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자신을 계시하시지 않는 한 그분께 다다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주도권에 따라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이며, 구원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사에 들어오심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양쪽 진영에서 모두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바르트를 가장 중요한 20세기 신학자로 꼽습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 출발한 그는 신학의 성경적 기초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자료출처 : 기독교 역사 100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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