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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한기총

한국기독교협의회NCCK에 대항하여 1989년 한기총이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처음부터 대형 교회들이 주도했고, 기부한 금액의 크기에 비례해서
지분을 행사하는 조직 운영 방식을 따랐다.
외국의 지원이 끊기면서 대형 교회의 기부금 없이는 운영이 거의 마비되는 상황에서
대형교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 되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은 신학교의 커리큘럼에 개입하여 교회성장학관련 과목들의 개설을 강화했고,
진보적 신학을 다루는 연구자들의 활동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보다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성장주의적인 방식을 강화하며,
진보적 신학 문서들을 사문서로 만들어버렸으며,
교회 간 연합체의 활동에서도 반공, 친미, 신자유주의 등의 이념 성향으로 사회를 선동하고,
그렇게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위축된 교세를 숫자만이 아니라 권력으로 만회하고자 했다.

군부 권위주의 시대 교회들이 밀실에서 수행했던
정교간 밀월 관계 대신 *기독교 정당을 만들기도 하고, 보수대연합의 일원으로
정치 제도 속으로 나서기도 하면서, 정권 창출을 위한 정치 과정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국민의 각성

교회의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기 시작한 때는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라는 거대한 사회 변동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

국가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는 자의식 속에서
국가가 부여한 역사적 사명으로 인식했던 국민들이
국가와 거래하고 교섭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민주적 제도를 도모하는
주체로서 각성한 것이다.

추방된 ‘신’

민주화 시대 각성한 국민은 권위주의적 잔재를 청산하려했다.
권위주의적 시대 감각을 잘 보여주는 교회는 바로 이 청산의 주요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교회는 더이상 새로운 모던 공간의 상징이 아니라,
퇴색된 모던의 장이었으며,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로 가득찬 공간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교회는 미국의 수호신을 추종하는 자들의 사모임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미국을 가슴에서 지워버린 것처럼, 미국의 신 또한 지워버렸다.
동시에 교회에 대한 호감과 동경이 철회된다.

 

뉴에이지

소비사회로의 급격한 이행기 부상한 존재는 ‘개인’이다.
자본은 개인의 취향을 개발하라고 속삭이며, 사적 욕망들을 충동질했다.
이 과정에서 욕망들이 한바탕 놀이를 벌이는 공간인 대중문화가 출현한다.

교회에게 대중문화는 하나의 공포였다.
일부 개신교도들은 그 속에서 작동하는 악마의 코드를 읽어내고자 노력했다.
이것이 이른바 ‘뉴에이지’다.

‘뉴에이지’는 대중문화 속에 서식하고 그 현상을 이끌어가는
일종의 유사종교 현상으로 해석되었다.

 

변화

앞에서 보았듯이, 대부분 신학자와 목회자들 그리고 신학과 학생과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읽어내는 안목은 물론 참여와 책임에 관한 문제의식도 현저히 퇴화했다.

이제 교회는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교회는 현대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고 참여와 책임의 가능성을 묻는
신학적 모색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료출처 : 시민 K, 교회에 나가다

*주1) 기독교 정당
대한민국의 기독교 정당 운동은 2004년 총선부터 시작됐다. 2004년 조용기, 김기수, 김준곤 목사 등이 참여한 한국기독당은 17대 총선에서 1.1% 득표를 기록했다. 2008년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기독사랑실천당은 비례대표 의석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 3%에 0.41% 못 미친 2.59%(약 45만 표)의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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